| 통계청 사망원인 조사 |
| “30대-차 40대-간질환 50대-뇌혈관질환 가장 많다” 건강한 삶 ‘버릴줄 아는 용기’서
나온다 |
| ‘서른 잔치는 끝났다’고 한 어느 시인의 시처럼, ‘하는 운동보다도
보는 운동을, 애주보다도 술마시는 분위기의 |
| 폭주를 더 좋아하고 술집에서 지갑을 챙기고 제각기
신발을 찾아 신고 떠난’ 30대. 스트레스를 술과 함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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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삼키고, 악마의 유혹인 담배로 건강도 함께 피워
날리며, 운동을 멀리해 온 그들은 40·50대가 되어서야
자 |
| 신의 건강에 빨간 불이 켜져 있음을
안다. 그러나 빨간 신호등 앞에서도 맹렬하게 질주하는 중년의 사내들. |
|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‘1999년 사망원인 통계조사’에 따르면 30대는 교통사고, 40대는
간 질환, 50대는 뇌혈관 질환 |
| 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. 그리고 이같은 사망원인의 분 포는 주로 남성들
때문이라는 분석도 |
| 나왔다. 40·50대 남자의 사망률은 여자보다 3배나
높았다. 우리나라 40·50대 중장년층 남성의 삶은 쉼없는 질주 |
| 속에서 하루하루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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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0대 사망원인 1위인 자동차 사고는
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거나 술에 취한 |
| 채 걷다가 차에 들이 받히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. 40대
사망원인 1위인 간질환은 30대부터 퍼마시기 시작한 |
| 술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
때문이고, 50대에 들어서는
간 질환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|
| 담배의 해악이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중풍
등 뇌혈관 질환의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. 결국 연령별 사망원인 1순위 |
| 는 스트레스와 과음, 과
다한 흡연, 그리고 음주와 흡연을 통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그릇된 습관이 밑바탕이 깔 |
| 려 있는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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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결과만 놓고 본다면 한국 남성들은 꽤 동정받을 만하다.
직장생활에 들어서는 30대부터 50대까지 치열한 경 |
| 쟁 속에서 만성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온갖 병을
얻고, 그것도 모자라 사회로부터 냉대를 당하게 되 |
| 는 경우가 다반사니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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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하지만 저간의 사정이 그러할지라도 당연히 질타는 따라야겠다. 아니 불쌍한 그들의 삶을 건지기
위해서라도 마땅히 |
| 그래야 한다.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, 어느 누구도 벗어날
수 없는 현실을 |
|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항변할 지도 모른다. 그러나 정작 자기 속에 숨어 있는 집착과 탐욕과
성냄과 어리석음을 탓 |
| 하지는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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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0대의 젊음은 20대처럼 무모하지 않은 이성적인
힘이 있다. 스트레스를 자기발전의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는 |
| 이지(理智)의 힘이 있다. 스트레스를 벗기 위한 음주가 교통사고로 이어진다면 다른 나라에서도
그러해야 할 텐데 |
| 결코 그렇지 않다. 문제는 자기 통제력인 것이다. 40대는
불혹(不惑)이라 했다. 위에서 누르고
아래에서 치받는 샌 |
| 드위치 신세지만 삶의 맛을 낼 줄 아는 지혜(흔들리지
않는 자기 만의 길)가 있다. 50대에는 세상을 한 걸 |
| 음 뒤로 물러서 바라볼 수
있는 여유로움(관조)이 있다. 세상이치가 다 그런 것이라고 조롱해도 괜찮을 ‘세월의 |
| 훈장’이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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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렇게 나이에 걸맞는 삶의 주체적 자각이 있다면 삶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.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
필요하다. |
| 부처님은 “진실로 내것이 아니면 버리라”고 했다. 과도한 욕심과 집착은 결국 정신과 육체를
황폐화시킬 뿐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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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부처님은 묻는다. “너희가 가지고 있는 눈·귀·코·혀·몸·뜻(意)은 영원한 것인가 아닌가?”
“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괴로 |
| 운 것인가 아닌가?” “괴롭다면 괴롭고 영원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? 그것은
아무리 집착해도 ‘나’ |
| 도 아니고 ‘나의 것’도 아니다.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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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‘버릴 줄 아는 용기’, 그것은 힘겨운 삶의 이면에 감춰진, 아니 스스로 감추고 찾지 않은 건강한
삶의 방식이다. |
| 스트레스보다, 폭음과 과도한 흡연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‘버릴 줄 아는 용기’를‘포기’로 여기는
착각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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